보더스가 파산선언을 하고, 상점 200곳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 중 내가 가끔 다녔던 보더스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이들에게 Barnes & Noble 나 Borders가 얼마나 의미로운 곳인지,  이곳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잘 알 것이다.

미국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대형서점이 제공하는 문화적 혜택이었다. 
서점이 아이들을 위해 가장 많은 공간을 기꺼이 할애하고 있었다.  
물건들을 빼곡히 진열하는 대신에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해 두고,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놓았는가 하면,  계절마다 인테리어를 바꾸어 마음도 살짝 들뜨게 하였다.  게다가, 매장에 있는 책이나 장난감은 어떻게 보고 만지든 거의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점만은 아니고, 미국에 있는 상점들이 소비자에게 매우 관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미국 내에 있는 한국 팬시점에 갈 때면 소율이에게 주의를 주어야 할 판이다. 한국 팬시점에서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거나 아예 자리를 틀고 앉아서 물건들을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만지지 말라'는 경고문을 붙여 두었고,  직원은 높은 의자에 앉아서 감시하기 때문에, 소율이가 천진난만하게 이것저것 만지면 신경이 쓰인다.)

소율이와 나는 푸르덴셜 내에 있는 Barnes & Noble이나 쿨리지코너의 Booksmiths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마음편히 두 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엔 가장 적합한 곳이니까...   
그러다보니,  얼굴을 익힐 정도로  자주 만나는 이들도 생겼다(소중한 친구 두 명도 그렇게 사귀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니 친구 만들기엔 좋은데,  이 단골 방문객!들 중 어떤 이들의 행동은 눈살을 다 찌푸리게 한다.  
아이들은 제 각자 돌아다니면서 장난감이니 책을 죄다 흐트러 놓는데, 베이비시터나 부모들은  책이 난장판이 되어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줄을 모르고 사람들과 수다 떨기에 바쁘시다 . 그리고 잠시 후에 아이들만 쏙 빼서 유모차에 태우고 유유히 돌아간다.  어떤 책은 심하게 찢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침으로 샤워를 했다. '다 본 후에 책을 제자리에 꽂아 달라'는 경고문은 몸둘바를 모르는듯 그냥 있다.  직원들은 책 치우기에 바빠 보이는데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단단히 훈련된 인내심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나 싶다.  
그리하여, 이렇게 훼손되거나 중고가 되어버린 장난감은 연말에 3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  

물론 소비자의 원성을 사지 않으면서, 살 길을 찾기 위해  서점도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는 것 같다.
어느날은 갔더니 구석에 카메라가 메달려 있었다. 사람들의 self-monitering 을 경각시키려는 전략인지, 도난을 방지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물건 훔치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훔쳐봐야 부피만 크고 비싼 것도 아니라서 첫번째 이유가 유력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들은 하던 대로 한다. 
또 어느날은 커다란 통에 책과 장난감을 잔뜩 쌓아 놓고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어떻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물론, 진열대에 있는 책도 자유롭게 보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이건 좀 효과가 있는듯도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한던 대로 한다.  

서점이 문을 닫는데는 여러 다른 이유가 있지만(특히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  이러다 내가 좋아하는 이 서점들도 문을 닫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보면 그냥 괜한 걱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즐겁게 책구경 실컷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마존에서 책사고,  싸게 샀다고 좋아하고. .. 이건 개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소비이지만 크게보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문화적 혜택에 대한 무임승차이기 때문에....  무임승차가 늘어나면 운행이 불가하지 않겠는가, 다른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되돌아 오거나.

언제부턴가 나도 소율이 장난감이나 책을 되도록 내가 좋아하는 가게에서 사고 있다. 워낙에 쇼핑을 잘 않기 때문에 그 가게에 보탬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누리는 혜택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잘 보면, 배송료를 감안해서 오프라인에서 파는 책들이 더 싼 경우도 종종 있다(할인하는 경우). 값이 비슷하거나 살짝 더 비싸기도 하고. 아주 비싸지 않다면 상점에서 직접 사는게 가장 현명한 소비일 것이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최소한의 예의만이라도 갖출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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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mpty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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